2020. 3. 2. 19:56ㆍ책100권에벌써건물주
p.33 그때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한 번만 쓰고 버리는 단수여권인데도 그나마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1987년까지는 50세 이상만 과노강용 단수 여권을 발급당을 수 이썽ㅆ다. 이후 40세, 30세로 연령이 낮아지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연령제한이 폐지되었다. 1989년까지는 일가족의 여권 신청도 제한을 받았는데, ‘해외 도피 우려’가 그 이유였다. 나는 군 미필자여서 아버지 친구 중의 한 분이 신원 보증을 서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귀국하여 입대하지 않으면 그분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된다고 했다. 소양 교육이라는 것도 이수해야 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전시인 한국반공연맹이나 한구관광공사에서 가서 ‘공산권 주민 접촉시 유의사항’ 같은 주제의 교육을 받았다.
p. 125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읽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작가가 된 뒤에는 같은 제목의 단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자의 기억을 돕기 위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인공 슐레밀은 우연히 어떤 파티에 참석해 신비한 인물을 만나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그림자를 팔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주인공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는다. 그림자라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무언가를 파는 대신, 엄청난 부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한 것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는 이 소설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시작한다. 김현경은 이 ‘그림자’라는 것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가 묻는다. 이것은 영혼인가? 나중에 악마가 영혼도 팔라고 하는 걸 보면 영혼은 아니다. 그림자를 팔아버린 뒤에도 주인공은 도덕과 윤리를 지키고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한다. 그림자가 무엇인지는 그림자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사람들은 배척한다. 모름지기 인간은 그림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김현경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민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p.129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스 체스키도 있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기업 가치가 호텔 지인 힐튼 그룹을 넘어섰지만 그는 아직도 집을 소유하지 않고, 대신 2010년부터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 집, 남는 방, 휴가 떠난 사람의 빈집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절실하다. 환대받지 못하는 곳에서 적절한 장소도 부여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운명은 비참하다.
p.130 내 소설 <검은 꽃>은 1905년에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간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계약기간이 끄타는 1910년, 그들은 돌아갈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존재감이라고는 없던 나라였지만, 그래도 그르에게 여권을 발급해주었던 대한제국은 없어져쏙, 이제 그들은 누구의 백성도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그림자를 잃어버렸고, 방랑이 시작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멕시코혁명에 휘말렸다가 과테말라의 정글로 흘러들어가 거기서 죽는다.
p. 148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p.155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p.180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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